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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쓰는 글

첫만남

곰탱신 2020. 5. 20. 14:10

"흐으흑... 흐... 크윽.."
무릎과 발이 쓰라리다. 그곳으로부터 도망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정신없이 기어서 도망치느라 미처 주변 환경을 살피지 못했다. 일단 몸을 숨기려고 산에 숨어들 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욱 깊숙이 들어와 버린 모양이다.
어쩔까. 날은 저문지 오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내 시야를 확보해주는 달빛과 여차하면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가져온 단도 한 자루뿐인데. 
일단 이왕 살아남은 거 여기에서 조금 더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여유를 갖자 그제서야 상처투성이인 내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와서 손에 신경을 쓰기도 뭐하지만. 활은 쏘고 싶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난 내 치마를 찢어 내 손에 둘렀다. 이걸로 상처가 더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 후로 약 10분 정도 수풀속에 몸을 맡기고 휴식을 취했다. 마을로부터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달려서 그런지 눈이 자꾸만 감겼다. 여기서 자다가는 내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잠 들지 않기 위해 다시 일어서서 나무를 손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든 생각은 
끝났군.
나가는 길을 모르겠다. 다른 마을로 넘어가는 길을 있을 터인데 아무리 달빛이 있다지만 맨눈으로 길 찾기란 쉽지 않았다. 걸음을 내딛을수록 내 체력은 이제 한계라고 소리쳤고 몸은 쌀 1000석을 짊어진 듯 무거워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 내 눈꺼풀은 이미 감겨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쓰러졌다. 내 최후가 산에서 외로이 죽는 건가. 뭐 나쁘지 않다. 그 녀석들 손에 죽는 것보단, 그딴 짓을 하는 것보단. 
몸이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곧 있으면 몸의 기능이 멈추고 난 죽게 되겠지. 죽기 직전에 주마등이 스친 다는데, 난 아직 인가.
한 참 그런 생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들리는 짐승의 기척에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뒤이어 사뿐사뿐 풀들을 밟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산에 짐승이라면 곰이나 호랑이 정도 일려나. 그래.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난 나를 먹어줄 동물의 얼굴이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온 몸의 힘을 쥐어짜 내 땅을 짚고 고개를 들었다.
어....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건...
"신수님?"
겉모습은 백호였다. 하지만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털에 날 주시하고 있는 노란 눈, 도저히 평범한 짐승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기운. 저 백호가 신수라는 것을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깨끗하고 시원했으며, 따스했다.
아름다운 산 속, 나와 신수님을 비추는 밝은 달빛, 이 모든 것이 꿈같고 다른 세상인 것 같아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보기만 해도 몸의 피로가 씻겨내려 활기가 돌았다. 신이 내게 기회를 주신 것일까.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신수님은 묵묵히 날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않았다. 하지만 난 왠지 그것이 신수님 나름의 배려인 것 같아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서로 말 없이 바라만 본 이 날이 나와 신수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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